뇌 MRI 촬영에서 경험한 폐쇄공포증
26년전 겨울 어느날 저녁 뇌출혈로 의식을 잃고 쓰러지신 어머니를 등에 업고서 아버지께서 맨발로 뛰쳐 달려가셨던 그 병원입니다.
지금은 내가 어머니와 같은 병증의 환자가 되어 같은 곳에서 관리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병원을 올 때마다 느껴지는 만감이 교차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물려주신 나의 몸에는 본태성 고혈압이라는 질환도 함께 유전되어 있습니다.
십분의 일 밀리를 다루는 매우 섬세한 치과진료, 그리고 사람을 상대하는 그것도 아프고 예민한 사람들을 상대해야하는
치과의사라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직업적 환경을 생각한다면
굳이 어머니께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본태성 고혈압이 아니더라도, 심혈관계 질환은 필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2년전 건강검진때 촬영했던 뇌 MRI에서 한쪽뇌 심부에 뇌출혈의 흔적이 우연히 발견되었습니다.
아마도 언젠가 술에 취해 깊히 잠들었을때 나도 모르게 뇌출혈이 큰 증상을 일으키지 않고 미약하게 스쳐지나갔던 모양입니다.
천만다행이었습니다.
토끼같은 마누라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딸래미도 있는데...
그동안 앞만보고 쉼없이 달려온 탓인지, 매일 반복되는 스트레스로 인한 탓인지
최근들어 손과 입술, 혀가 저리고, 발음도 어눌해지는 것도 같아서 겁이 덜컥 났습니다.
행여나 더 진행된 뇌출혈의 전조증상인 것은 아닐까...
치과진료 하루를 포기하고 나의 심혈관계 병력기록이 있는 이 곳을 찾았습니다.
이른 아침 적막한 복도 한켠의 신경과를 방문하여
환자가 되어 주치의 선생님께 그간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뇌 MRI를 촬영하기로 합니다.
이번에 촬영하는 뇌 MRI 사진과 2년전 촬영된 뇌 MRI 사진을 서로 추적 비교하기 위해서입니다.
다행히 최근의 일련의 증상들이 스트레스에 기인한 과호흡증후군으로 나온 일시적인 현상일뿐,
뇌출혈의 전조증상은 아닌것 같다는 주치의 선생님의 말씀에 약간의 안도감을 가지고 촬영에 임합니다.
태어나서 두번째로 촬영하는 뇌 MRI...
처음 촬영했을때는 몰랐는데 이번에 촬영했을때는 참 힘들고 공포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머리에는 고정용 투구를 쓰고 30여분간을 조금도 몸을 움직이지 않은채로 MRI 촬영에 임하는 경험은
마치 죽어서 관 속에 홀로 들어가는 기분이랄까....나에게 내재되어있던 폐쇄공포증을 일깨우기 충분한 공포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어쩌면 좁고 밀폐된 관 속에 산채로 생매장되는 기분이 이런것일지도...ㅠㅜ
촬영 30분이 3시간처럼 느낄정도로 길고도 지루한 공포감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MRI를 촬영할때 느끼는 이런 불안감과 폐쇄공포증을 상쇄시키기 위해 진정제를 투여하고 촬영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2년전 나의 뇌 MRI사진 입니다.
화살표가 가리키듯 나의 한쪽 뇌 깊은 곳에 뇌출혈로 인해 구멍이 뚫린(?) 흔적이 또렷이 보입니다.
이번에 촬영한 결과가 과연 어떻게 나올지 이 사진 소견에서 특별히 더 진행되어있지 않길 바라고 또 그리 나오겠지만,
그래도 일주일 뒤 나올 결과가 조금은 두렵기도 합니다.
행복하게 산다는 것...
행복의 조건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건강이 가장 으뜸이고 첫번째인 행복의 조건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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