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잘 모르는 한낫 치과의사일뿐지만,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삶도 죽음도 모두 자연의 일부일 뿐이라는 유서 한 구절도 나를 눈물짓게 합니다.
인생이란 이렇게 덧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먼 훗날 내 아이들은 어떤 세상에서 살게 하고픈지 자문한다면 답은 나올 것 같습니다.
2009년 5월 25일 한겨레신문 칼럼란에 고등학교 후배의 기고문이 실려서 소개하는 것으로 애도를 대신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356703.html
나는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좋아했다 / 나승철
정치인으로 드물게 눈물을 흘릴 줄 알고 노여운 일에 분노할 줄 아는 사람. 그에겐 다른 정치인과 다른 인간적 매력이 있었다. 언론은 그것이 위선임을 입증하고자 날뛰었다. 검사들은 출세 위해 굶주린 사냥개처럼 굴었다. 그가 준 용기와 희망만으로도 애도할 이유 충분하다
처음에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확인이라는 기사 제목을 봤을 때는 정치적으로 사망했다는 뜻인 줄 알았다. 그런데 기사를 클릭해서 내용을 읽어보니, 정말로 노 전 대통령이 사망을 했다는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살 여부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는데, 나는 순간적으로 자살을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노 전 대통령이 봉화산에서 투신을 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몹시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동안 숱한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서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른 그였기에, 나는 이번 검찰 수사도 어떻게든 헤쳐 나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온 가족들을 상대로 조여들어오는 수사망과 매일 야구 중계하듯 ‘의혹’을 보도해대는 언론 앞에서 그는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수십년간 동고동락한 친구들이 구속되고, 가족들의 사생활이 죄다 파헤쳐지고, 이제는 위선자로 낙인찍힌 현실이 그의 정신력을 급속도로 소진시켜 버렸던 것 같다.
나는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좋아했다. 그는 정치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슬픈 일에 눈물 흘릴 줄 알고, 노여운 일에 분노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의 그러한 인간적인 면모가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대통령으로서 한 일을 모두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으로서의 공과를 떠나 그에게는 다른 정치인들이 갖지 못한 인간적인 매력이 있었다. 아직도 밀짚모자를 쓰고, 관광객들 앞에 나와 방긋 웃으면서 농담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언론들은 이번 박연차 사건을 통해 그의 그런 인간적인 매력이 위선이었음을 입증하고자 길길이 날뛰었고, 의혹이 하나하나 제기될 때마다 마치 새로운 금광이라도 발견한 것마냥 기뻐하며, 대서특필하였다. 여당 국회의원들은 그를 “위선자”라고 몰아세움으로써 자신들의 표를 긁어모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검사들은 전직 대통령을 구속함으로써 자신들의 출세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자 마치 굶주린 사냥개처럼 노무현의 주위를 뒤지고 다녔다. 그리고 현 정부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미명 아래 굶주린 사냥개가 늙은 사자를 물어뜯는 것을 나 몰라라 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왜 그의 죽음이 그가 저지른 잘못을 덮어야 하는 이유가 되는지 알 수 없다고들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왜 노무현이 받은 고통만 애도받아야 하고, 노무현이 다른 사람에게 가한 고통은 모른 척 해야 하느냐고 강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노무현의 죽음에 애통해 하는 것은 그의 잘못을 덮기 위함도 아니고, 그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들의 아픔을 무시하기 위함도 아니다. 우리는 이미 그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또 그에게서 고통을 당한 사람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 다만 노무현의 잘못과 노무현이 가한 고통을 이유로 그의 죽음을 “꼴좋다”고 비아냥거리기에는 그가 우리에게 준 용기와 희망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애도 받아서는 안 될 죽음은 없다. 그리고 한 인간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은 남아있는 인간의 도리이고, 그것은 고인의 잘못을 비난하기 전에 인간으로서 가장 먼저 이행해야 할 의무인 것이다.
몇 시간 동안 뉴스 속보만을 보고 있는데, 노무현이 남긴 유서의 내용이 공개되기 시작했다. 그저 무거운 마음으로 듣고 있다가 마지막 구절에서 어쩔 도리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마을 주변에 작은 비석 하나 세워라.”
마지막 순간까지도 노무현은 노무현답게 이 세상을 떠나갔다. 왠지 그의 묘소는 국립묘지에 있어서는 안될 것 같다. 그의 묘소가 너무 으리으리하지도 않고, 그냥 옆에 앉아 “바보처럼 왜 죽었냐”고 소주 한잔 부을 수 있을 정도였으면 좋겠다. 그의 말대로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봉하마을 어느 작은 비석 밑에 평안히 안식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나승철 서울 송파구 문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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