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용 입니다/현재 일상

아내의 꿈을 외조하고 싶었던 주말부부 남편

달려라꼴찌 2010. 8. 21. 07:24
아내의 꿈을 외조하고 싶었던 주말부부 남편 


 

저희 부부는 주말부부입니다.

둘째 딸 서현이를 낳고 곧바로 시작한 1-2년을 예상했던 주말부부 생활이 벌써 4년을 훌쩍 넘어 5년째입니다.

 

다른 주말부부 가정과는 다른 점이 있다면 가장이자 아빠인 제가 서울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아내는 평일에는 멀리 대덕연구단지에 내려가 선임연구원으로 일하며 기숙사 생활을 하고

주말이 되어야 서울로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도 엄마보다는 함께 더 오래 있는 아빠를 자연스레 더 따르게 되었고,

엄마 없이 대부분을 지내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방목하게 되어 점점 더 인기영합주의 아빠가 되어갔습니다. ㅡ.ㅡ;;;

 

 

 


'나는 사이언티스트(scientist)지 약사가 아니에요.' 이화여대 약대를 졸업한 아내가 연애시절 했던 말입니다. 

아내는 자신의 정체성을 기초학 실험과 논문을 쓰는 과학자의 길에서 찾고자 했고, 또 그 길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러나 여타 이공계 학위자들의 취업처럼, 아내 역시 자신의 전공에 맞는 마땅한 직장 대부분은 지방에 소재했었기에, 

아내가 멀리 대덕연구단지에 취업하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전공과는 동떨어져도 서울 소재 제약회사나 약국에 취업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클때가 많지만,

저 또한 무엇보다 과학자로서의 아내의 꿈을 이루는 것을 적극 외조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이들도 커가고, 그동안 아이들을 돌봐주셨던 장모님, 장인어른도 늙으셔서 많이 힘들어 하십니다.

그렇다고 동료 원장이나 수많은 환자 분들을 등지고 10여년 공들여 가꾸어온 치과를 정리하고,

40년 넘게 살아온 서울을 떠나서 온 가족이 대전으로 내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아내도 나이 들어 흰머리도 하나둘 늘어가면서 더 이상은 아이들과 떨어져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어떻하든 출퇴근이 가능한 수도권으로 연구소를 옮겨보려고 백방으로 알아보았지만, 

대학교 연구소 말고는 대부분의 생약학 관련 연구소는 대덕단지나 멀리 지방에 있기에 이 마저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아내는 비록 실험과 논문 실적이 뛰어난 편이지만,  국내박사 학위자라는 한계도 있기에 대학교는 커다란 벽이었나 봅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저에게 대전의 연구소에 사표를 내고 미국에 1년 정도 유학을 다녀와 스펙과 캐리어를 더 쌓고 싶다는

심각한 고민을 털어 놓습니다. 헉 ㅡ.ㅡ;;;

그리곤 유학을 다녀온 후 될지 안될지 모르겠지만 대학에 지원해보고 싶다고 합니다.

만약 그 때도 안된다면 과학자로서의 지난 20년 동안의 모든 꿈을 접고 전업주부나 약사로서의 길을 걷겠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외조 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합니다. 

 

 

 


20대 젊은 청년기 시절 저는 방황도 많이 했고, 세상 원망도 참 많이 했었습니다.

가족이란 것도 저에게는 그저 머나먼 남의 이야기인 것만 같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면서 안정을 찾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10년의 결혼 생활 중 절반 가까이 이렇게 따로 떨어져 사는 것에 대해 회의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내의 꿈을 실현하는데 누구보다도 큰 힘이 되어주는 남편이 되고 싶었고,

사랑하는 딸 아이들에게도 누구보다 든든하고 다정한 아빠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기에 1년간 미국 유학을 다녀오고 싶다는 아내의 말을 차마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주변 사람은 아내가 미국 유학 떠남을 계기로 장기적으로는 결국 제가 기러기 아빠가 될 것이라며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만,

아내의 미국 유학을 허락한 이유는 우리 가족이 떨어져 살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 함께 살기 위함 이었기에 그저 미소만 지을 뿐입니다.

 

이제 아내는 내일이면 미국으로 떠납니다.

당분간은 제가 수퍼맨 아빠가 되어 장모님과 함께 다현이, 서현이를 돌봐줘야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수퍼맨 인생입니다. ㅡ.ㅡ;;; 

 

사랑하는 다현이, 서현이 엄마....

나는 누구보다도 당신이 꿈도 이루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합니다.

그러나 유학생활 후 혹시라도 결과가 안좋다 하더라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리 가족들은 모두 함께 살아야 합니다.

너무나 소중한 나의 가족이기에 기약없이 흩어져 사는 기러기 아빠가 되는 것은 죽는 것보다 두렵습니다. 


행복이란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랫동안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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