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용 입니다/그리운 유년기

어머니 살아 생전 마지막 드신 밥상

달려라꼴찌 2009. 12. 28. 06:37

 어머니 살아 생전 마지막 드신 밥상

 

 

35년도 훨씬 더 오래된 세월의 흔적에 찢어진 부분까지도 남아있는 낡디 낡은 빛바랜 이 사진....

어린 제 손에 쥐어진 과자 한봉지, 그리고 어머니 무릎에 안겨 찍은 이 사진 한장만으로도

5형제 중 막내인 저를 유독 어머니께서 얼마나 애지중지 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언제나 늘 나의 편이었던 어머니는 어딜 가시던 늘 막내 아들을 옆에 두셨고,

저 또한 어머니 품이 너무 따뜻하고 또, 어머니 특유의 내음이 좋았었기에

항상 한이불 속에서 어머니를 마주보며 꼭 끌어안고서야 겨우 잠이 들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15년이 다 되도록 단 한 순간도 어머니 품에서 떨어진 날이 없었습니다.

 

7살 어린 시절.....

세상은 영원한 것은 없고 누구나 다 언젠가는 죽어 한줌의 흙이 된다는 자연의 섭리를 조심스럽게 저에게 알려주실 때,

저는 너무 깜짝 놀라서 두눈을 똥그랗게 뜨고 어머니를 한참을 바라보다가 두려움에 떨려 묻습니다.

"그...럼.... 엄마도 언젠가는 결국엔 죽는거야?"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어머니의 대답에 절망에 찬 나머지 저는 그만 왈칵 울음을 터뜨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그렇게 감수성 풍부했던 저를 꼭 끌어안고서

행여나 이 어린 막내를 남겨두고 떠나는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말없이 함께 눈물을 흘리셨던 것이 제가 깨우쳤던 삶과 죽음에 대한 첫 기억입니다.

 

저는 지금 생각해보면 울보에 반찬투정도 심한 참 버릇 없는 철부지 소년이었습니다.

그날도 막내 아들이 반찬투정 하느라 다 못먹고 남긴 밥 아깝다며 한톨 남김없이 다 드신 어머니는

화장실에 씻으러 가신 후로 30분이 지나고 한시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으셨습니다.

차디찬 화장실 타일 위에 쓰러져 의식을 잃고 신음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의 충격은

중학교 2학년의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견딜 수 없이 가혹한 기억이었습니다.

 

세상살이 어느 하나 고단하지 않음이 어디 있겠냐만은

직업군인이셨던 아버지의 쥐꼬리 월급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일 것같은 형님 네분을 동시에 대학생을 만드셨고,

유독 학교공부에 재능을 보였던 막내아들인 저를 위해 무리해서 강남 8학군으로 전학시킨 그 이면에는

밭 갈고 돼지 치면서 홀로 묵묵히 말썽 투성이인 아들 5형제를 기르시던 늘 몽빼 차림의 어머니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는 막내아들이 강남에서도 공부 잘하는 모범학생으로 잘 적응하는 것도 못보시고 이사온지 넉달도 못되어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의 그 크신 희생과 사랑을 뻔히 알면서도 저는 단 한번도 어머니께 따뜻하게 사랑한다는 말을 못했습니다.

지금은 얼마든지 사랑한다는 표현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반찬투정 안하고 밥 한톨 남김없이 맛나게 잘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樹欲靜而風不止 (수욕정이풍부지)  나무는 고요히 있고자 하지만, 바람이 그치지 않고
子欲養而親不待 (자욕양이친부대)  자식이 봉양하고자 하지만, 부모님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갑작스런 어머니의 죽음 뒤에 이어진 아버지의 재혼, 사춘기 시절의 방황, 청년기의 절망 등 삶의 무게를 하나하나 힘겹게 딛고 일어서

이제는 어느덧 한 가정을 이루어 두 딸 아이의 아빠가 된 지금에는

어머니께 받은 사랑 그대로 아이들에게 되돌려주는 것 말고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늘이 어머니의 기일입니다.  

그날도 이처럼 눈이 세차게 내렸던 날이었습니다.

 

어머니 살아 생전 마지막 드신 음식이

다름아닌 어머니께서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철부지 막내아들이 먹다 남긴 밥이었던 것이

가슴 속에 늘 회한에 사무쳐 해마다 이 맘때면 이 불효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엄마, 사랑해 너무나 보고싶어...

 

 

 

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