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교에 발전기금 기부하고 싶었던 평생 꿈
제 모교인 연세대학교는 기독교 재단의 사립학교입니다.
지금보다도 더 서울대학교 만을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었던 그 당시
서울대 병에 걸려 두번의 대학입시 실패를 딛고 입학하게된 연세대학교는
비록 전액 장학생이었지만 당시 어린 마음의 제 스스로는 만족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예과 2년을 겨우겨우 패쓰하는 수준으로만 방황과 허송세월을 보낸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서 공부와 진리 탐구에 눈을 뜨게 된 것이 본과 1학년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현대식 의학 교육기관이었던
세브란스 교정의 삐걱거리는 나무계단 하나 하나에서, 의학 도서관에서의 낡은 책 한권 한권에서
백이십여년의 역사와 발자취를 그대로 온전히 제 가슴 속에 스며들어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학교에 다닌 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자부심이었는지,
비록 개신교도는 아니었지만 종교행사인 채플이 얼마나 제 인생에 있어 큰 마음의 양식이 되었는지,
본과 1학년이 되어 정신차리고 공부에 매진하였을 때 비로소 조금씩, 조금씩 제 마음에 자리잡아
점차 연세대학교만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
치과대학 본과 생활은 정말 치열했습니다.
24시간 개방되었던 의학도서관에서 밤을 지새운 날이 1년 365일 중 족히 몇달은 되었을 것입니다.
공부하다 출출함을 느끼면 밤참으로 신계치(신라면+계란+치즈) 한그릇 먹기 위해 새벽별 바라보며 신촌의 포장마차집을 찾으면
뿌연 연기 속에서 먼저 자리잡고 후루룩 라면을 먹던 의대, 치대 동문들의 왼손에는
거의 어김없이 노트필기가 쥐어져 라면 먹는 틈틈히 보고 또 보고 외우기 바빴던 열정적인 모습들에,
연세대학교는 점차 저의 무한한 자부심과 마음의 고향이 되어갔습니다.
그런 열정과 패기로 치과대학 본과 4년 8학기를 모두 장학금의 도움을 받아 졸업을 할 수 있던 저는
학창시절 제가 받았던 모교의 커다란 은혜는 언젠가 사회에 나가 자리잡으면
선배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는 꼭 모교에 돌려주고 싶던 꿈과 로망을 잊지 않고 살아온 나날이었습니다.
유니세프, 월드비젼이나 주변의 결식아동들, 소년소녀가장들에 대한 기부활동을 나름 열심히 정기적으로 하곤 있었지만,
늘 마음 한자리에는 언젠가는 모교에서 받은 은혜를 꼭 갚고 싶다는 꿈은 잊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드디어 며칠 전 모교에 발전기금을 기부하게 되어 연세대학교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치과대학 학장님과, 연세의료원장인 의무부총장님의 융숭한 환대가 있었습니다.
금의환향이라 할 정도로의 환대를 받을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오히려 부족한 기부금 액수에 부끄러워지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적은 금액이지만, 모교의 발전에 그래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매년 점차 모교에 대한 기부액수도 늘려나갈 수 있으면 하는 꿈도 꾸어봅니다.
나라가 부유해질수록, 국가에서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립대학의 재정은 상대적으로 어려워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 사립대학들이 재정적으로 많이 힘들어한다고 합니다.
사립대학교 출신의 동문 선후배 여러분들이 다른 무엇보다도 모교에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여
십시일반으로 모교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도움의 손길을 주는 모교사랑 캠패인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결국 내 아이가 다니게 될지도 모르고, 우리나라의 커다란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현장이기 때문입니다.
모교에 발전기금 기부하고 싶었던 평생 꿈을 이제 막 시작하던 날,
"아무리 돈이 많고, 여유가 있어도 그런 생각 못하고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당신의 아내가 된게 정말 자랑스러워요."
아내가 저를 꼭 안아주며 한 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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