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용 입니다/치과대학 시절

내 인생을 바꾼 치과대학 시절 조직학 수업

달려라꼴찌 2009. 9. 8. 06:53

내 인생을 바꾼 치과대학 시절 조직학 수업

 

 

 

의과대학이나 치과대학의 본과 1학년의 교과과정은 말 그대로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고등학교처럼 1교시부터 8교시까지 공강없이 빡빡하게 채워진 시간표,

8교시 이후에는 밤 10시까지 계속 이어지는 방과후 실습, 그리고 하루걸러 치르는 시험의 연속...

그 시험도 고등학교처럼 100점만점에 몇점...석차까지 모두 낱낱히 공개되는 경쟁구조...

한마디로 하루하루가 숨이 탁탁 막히는 나날이었습니다.

 

게다가 학력고사 세대인 저는 과학과목을 물리, 화학을 선택하여 입학했던터라

고등학교1학년 이후로 생물과목을 쳐다본 적도 없었기에 치과대학의 학과공부를 쫒아가는데는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본과1학년 1학기때 접하는 의학에 있어서 기초가 되는 학문인 6학점의 해부학과 5학점의 조직학은

그런 저에게는 감히 넘어설 수 없는 히말라야처럼 거대한 산처럼 보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해부학(anantomy)은 크게 세가지로 나뉩니다.

육안으로 뼈, 근육, 신경, 혈관의 계통및 주행경로를 분석하는 일반해부학 (gross anatomy, general anatomy),

현미경으로 각 조직들의 세포단위로 미세하게 파고들어 분석하는 현미경 해부학 (microscopic anatomy),

현미경 해부학은 다시 광학현미경 해부학(light microscopic anatomy)

전자현미경 해부학 (electronic microscopic anatomy)으로 나뉩니다.

광학현미경 상에서 보이는 세포단위의 해부학이 바로 조직학(histology)입니다.

그리고 전자현미경상에서 보이는 분자 단위의 해부학이 바로 생화학(biochemistry)입니다.

 

시신 (카데바)을 육안으로 확인해가면서 해부하고 분석하는 일반해부학은

그래도 눈으로 보이기에 무턱대고 외우기만하면 어느 정도는 따라갈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미경 상에서 보이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포들은 그 세포가 그 세포같이만 보일 뿐인데,

각각의 특정 세포내에 발달된 특정 세포내 소기관들의 형상을 파악하기란 뜬구름 잡기였고,

어린 저를 당황시키기고 좌절시키기에는 너무도 당연하였습니다.

 

이런 학생들의 당황스러움을 짐작하셨는지 조직학 첫 실험시간에 담당 교수님께서는 제 인생을 바꿔놓는 한마디를 하십니다.

"아는 만큼 보입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적 답사기'에 처음 나왔다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이 말은

사실은 그보다 먼저 저는 치과대학 본과1학년 때 처음 들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이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세상과 인생를 바라봄에 있어서도 함축적인 말인가?

아는 바가 적어서...공부가 부족해서..세상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내 시야는 장님 코끼리 만지는 수준의 근시안이 된 것은 아닐까하는 반성이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현미경 슬라이드, 교과서, 조직학 노트를 벗삼아 날밤을 밥먹듯 새우게됩니다.

치과대학 본과1학년의 수업은 대개 아침 8시부터 시작하여 밤 10시쯤 끝나지만,

24시간 개방되어있던 강의실에 홀로 남아 새벽 2시건 3시건 어떨때는 다음날 수업시작때까지도 날밤을 훌쩍 지새우며

끊임없이 정리하고 차곡차곡 지식을 쌓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몇날 며칠 밤새워 공부한 후 있었던 조직학 현미경 실습때 정말 신기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정말 아는 만큼 보인다고...아무리 노력해도 보이지 않았던 세포내 소기관들이 너무나도 커다랗고 또렷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발동이 걸린듯 신들린듯 취미를 가지고 본과시절 내내 새벽별보며 공부하였던 것 같습니다. 

정말 원없이 실컷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때는 원하는 대학, 학과에 들어가기 위한 목표를 위해 억지로 공부를 했었지만,

그 이후로는 학문 그 자체를 위해 공부를 하였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 말의 참의미도 조금씩 알 수 있게 되어 하루하루가 뿌듯하고 벅차오르는 나날이었습니다.

특히 과학자들의 한평생이 담겨져 있는 조직학 교과서의 한줄한줄은 경이로움과 존경 그 자체였기에

단 한 글자도 소홀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이 말은 지금도 세상을 살면서 겸손되게 사회를 바라보고 사람을 대하는데에 있어서도 제 인생을 바꾼 말이었습니다. 

 

 

 

벌써 거의 20년 가까이 된 치과대학 시절의 조직학 노트입니다.

세월이 세월인지라 그 시절의 조직학 교과서들은 다 분실되었지만,

제 인생의 열정이 담겨져 있는 치과대학 시절의 노트필기들은 아직도 서재 한곳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습니다.

 

 

    

 

  

  

 

 

당시 정리하였던 조직학 노트필기 몇장을 살펴보면...

대략 7-8가지의 갖가지 색깔의 필기로 촘촘히 정리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교과서 한번 정독할때마다 같은 색깔로 새롭게 알게된 진리, 기억해야할 사항을 추가로 정리한 것입니다.

이 노트 필기 한장을 채우기 위해서 최소한 교과서 (영문판, 한글판 대략 3-4권정도)를 7-8번 반복해서 정독을 하였기에,

이런 총천연색의 노트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몇날 밤새워 정리된 지식들은 현미경 속에 펼쳐진 세포들의 소기관들이 너무나도 커다랗고 또렷이 보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열정과 패기를 가지고 공부를 한 결과, 본과1학년 조직학 점수는 99점을 취득하여 

저는 당시 의과대학, 치과대학 모두 통털어 1등을 차지하게 됩니다.  ㅡ.ㅡ V

 

지금도 치과대학 그 시절 열심히 새벽별보면서 공부하고 정리했던 열정과 노력으로 하루하루를 산다고 자부하지만,

강요가 아닌 스스로 느껴서 자발적으로 조금이라도 사람의 몸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공부 그 자체를 즐겼던 기억과 추억들이...

지금에 와서는 내 자신의 삶을 더욱 자랑스럽고 자존감을 높히는데 크게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이 말은 지금도 세상을 살면서 더욱 겸손되게 사회를 바라보고 사람을 대하는데 있어서도

그렇게 제 인생을 바꾼 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