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의료대란 이후 전국 의과대학이 일시에 신설한 과목이 ‘의료와 사회’다. 의약분업에 혼쭐이 난 의료계가 고안한 사회와의 소통대책이다. 이 강의에서 의욕충만한 예비의사들에게 이런 투로 말해야 하는 것은 서글프다. ‘의사의 직업적 양심보다 수퍼마켓 주인의 경영노하우에 먼저 주목하라’. 강의실 분위기는 금세 썰렁해진다. 수재 소리를 들으며 그 어려운 의과학의 관문을 돌파한 인재들에게 무슨 모욕적인 언사인가. 그런데, 정말 미안하게도 그것이 냉혹한 현실임을 곧 알게 될 터이다.
외국 환자들이 한국으로 몰려온다는 언론의 수다는 서울의 민간 대형병원이 앞다퉈 신축한 초현대식 건물과 합성되어 신기루를 만든다. 한국의 의료가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다는 그 환상 말이다. 환자가 원하면 언제든지, 싼값으로, 수준급의 의료서비스를 살 수 있다는 그 점에서 한국의 의료는 가히 ‘세계적’이다. 이 화려한 명성의 뒷길에서 의사가 의욕상실증에 걸리고 의료체계가 붕괴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환자는 드물다. 역대 정권이 환자의 권리와 건보 재정에 비상한 관심을 쏟았던 데 반해 의료제도와 공급자의 문제는 알아서 해결하라고 팽개쳤던 결과다. 문제는 수없이 많다. 기초의학 붕괴, 산부인과·소아과·외과의 공동화, 환자의 수도권 쏠림 현상, 지방병원과 거점 대학병원의 경영악화 등등.
누구나 선망하는 의사의 직업명세서는 더 심각하다. 대한의사협회의 병·의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개원의들은 주 56시간 진료에 하루 60명의 환자를 받는다. 법정근로시간보다 16시간을 더 일한다. 개업에 소요된 평균투자액은 5억4000만원, 평균부채는 3억9000만원선. 개원의 모두가 초과노동과 채무에 시달리고 있다. 총매출액은 4억2000만원, 여기에 투입비용을 뺀 세전 순이익은 1억원 정도. 공공의료의 모델 격인 영국의 의사는 하루 10명을 진료하고 정부로부터 연봉 1억원 이상을 받는다. 한국 의사가 하루 10명을 받으면 일년 소득은 고작 2000만원이 된다. 의료수가가 낮은 게 원인인데, 이걸 인상하려면 국민 부담을 높여야 하기에 정권으로서는 일대 모험이 아닐 수 없다. 의사에게 내린 천형과 같은 이 조건을 타개할 길은 환자를 더 많이 받는 것, 즉 연장노동 외에 다른 수단이 없다. 품을 더 팔도록 만드는 한국의 의료현실은 의사로 하여금 육체노동자의 길로 접어들게 만든다. ‘의사 직업의 프롤레타리아화(化)’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다. 국민들이 합심해서 방치한 이 애달픈 현실은 결국 서비스 질을 악화시켰고 환자의 건강권을 해쳤다.
8일 정부가 발표한 ‘서비스업 선진화 방안’은 의료현장이 앓고 있는 이런 중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들이다. 더욱이 의사를 옥죄는 두 개의 법안이 대기 중이다. 약제비 절감을 위해 심평원 기준을 초과하는 과잉처방분을 의사가 물도록 하는 법안과, 해외 환자 유치 시 진료상 과실을 입증할 책임을 전부 의사 몫으로 돌리는 의료분쟁조정안이 그것이다. 부채와 과잉노동에 시달리는 의사의 등에 바윗돌을 얹는 격이다.
정치적으론 중요하겠지만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책들을 ‘선진화’로 치장하면 결국 정권의 값이 떨어진다. ‘아름다운 의료천국 만들기’가 현 정권이 원하는 ‘의료선진화’의 목표라면, 의료체제와 공급자의 문제에 우선 손을 대야 한다. 과제는 하나 둘이 아니다. 첫째, 환자의 수도권 쏠림 현상을 막아 지방의 병·의원을 살리는 것, 그래서 의료시설과 인력의 지역균형을 기하는 일. 둘째, 보장성 확대와 노인질환 증가로 인한 보험기금의 재정적 압박을 ‘의료현장 쥐어짜기’로 해결하려는 오랜 관행을 폐기하는 일. 셋째, 의료공공성 증진비용을 정부와 국민이 공동 부담하는 일. 넷째, 이런 조건을 전제로 의료정의와 서비스 질을 향상하도록 의사를 독려하는 일 등이다. 월급의 2.5%에 불과한 건강보험료로 15%를 내는 영국식 혜택을 누리겠다는, 한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의사(擬似)사회주의적 마인드, 그걸 버려야 의료현장이 살아난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