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용 입니다/딸딸이 아빠

아빠보다 어른스러운 딸의 세뱃돈 사용법

달려라꼴찌 2012. 1. 24. 07:56

아빠보다 어른스러운 딸의 세뱃돈 사용법




제 어린시절을 돌아보면 1년 중 가장 기다리던 날은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보다도 설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철 없게도 세뱃돈 타는 것에 관심이 훨씬 더 컸던 탓이겠지요. 

세뱃돈을 타면 낼름 문방구로 달려가 그동안 갖고 싶었던 프라모델이나 장난감들을 사는 것으로 설명절을 보내곤 했던 것 같습니다.

 


예쁜 한복으로 곱게 차려입고 큰집에 간 다현이와 서현이가 세배를 하고 있습니다.







형님들과는 나이 차이가 10살안팎의 터울로 아들만 5형제중의 막내로 자란 아빠의 딸들 답게, 

다현이 서현이는 사촌들 형제들 사이에서도 단연코 나이도 가장 어린 막내라 

이날 사촌 언니오빠들은 물론 큰아버지들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했답니다.  






쪼매난 아이들의 귀엽고 앙증맞은 세배에 흠뻑 반한 큰아버지, 큰엄마께서 세뱃돈도 두둑히 챙겨주었습니다.






다현이 서현이 사촌 오빠들에게도 인기폭발이어서 이렇게 오빠들에게 둘러싸여 신나는 카드놀이도 하였습니다.






이날 온가족이서 팀을 만들어 윷놀이도 했는데, 다현이 서현이의 생애 첫 윷놀이가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3등을 해서 상금으로 7만원을 받았답니다. 물론 우리가족 대표 주자인 다현이 서현이가 상금을 챙겼지요.









그렇게 설날 오전 큰집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엄마 아빠는 첫째 딸이 오늘 두둑히 받은 세뱃돈으로 무엇을 할지 궁금해졌습니다.

아빠 : 다현아 세뱃돈으로 뭐 할 계획이야?

다현 : 음... 비밀~!!

아빠 : 아빠한테만 살짝 이야기해주면 안돼? 다현이 사고 싶은 것 있으면 아빠가 같이 가서 도와줄께...

다현 : (단호하게) 싫어!! 비밀이야~!!

아빠 : 강아지 살꺼니?

다현 : 아니, 생각해보니까 엄마 말이 맞는 것 같아. 강아지는 안키우기로 했어... 

         내가 잘 돌보지도 못할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강아지가 너무 불쌍해...

아빠 : 그럼 미미 인형 살꺼니?

다현 : 아니, 비밀이야~!! 더이상 묻지 말아줘

아빠 : (살짝 삐진 듯 체념하는 말투로) 뭘하든 너무 흥청망청 쓰지는 말거라...


도대체 이 아이가 세뱃돈을 뭘하려는 건지 도통 말을 안해줘서 궁금하기도 했지만, 

말끝마다 비밀이야 비밀이야 하는 통에 '어느새 이렇게 훌쩍 커서 아빠한테도 숨기고 싶은 비밀이 생겼구나...' 

하는 서운한 감정도 생겼습니다.

 




그리곤 살짝 삐진채로 저는 집에 돌아와서 거실쇼파에 벌렁 누워 TV 채널을 이리저리 틀다가 그만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약 두시간쯤 잠이 들었을까요?.......


잠에서 깨어보니 거실 탁자에 다음과 같은 봉투 두개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아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엄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헉... 다현이가 설날에 받은 세뱃돈을 정확히 둘로 나눠서 엄마 아빠에게 이렇게 손수 만든 봉투에 담아 

이렇게 잠든 아빠 곁에 두었었네요...






그런데 더 놀랍고 감동적이었던 것은 봉투 뒷면에 있었습니다.....


원래 이걸로 아빠한테 선물 (사)줄라고 했는데 길을 몰라서....

원래 이걸로 엄마한테 선물 사줄라고 했는데 길을 몰라서....

P.S. 이걸로 아빠 다시 부자야?


에고... 다현이는 설날에 세뱃돈으로 엄마 아빠에게 선물을 사주려고 했던 것이었나 봅니다.

그런데 선물 사러가는 길을 몰라서 이렇게 봉투를 만들어 엄마 아빠한테 설날에 받은 세뱃돈을 넣어두었던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미국에서 돌아온 후로 아이들이 갖고 싶은 것들을 사달라고 조를 때면 아빠 이제 돈 없어...라고 얼버부렸던 것이

어린 딸들에게는 우리집이 이제는 가난해졌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래서 봉투 말미에 이걸로(이 돈으로) 아빠 다시 부자 된거야? 라고 쓴 것입니다.

흑, 자기 갖고 싶은 것도 많았을텐데 ㅠㅠ


아... 이런게 딸 키우는 재미인가요?

아니면 첫째 아이라서 그런걸까요?

이제 겨우 우리나이로 10살이 되었을 뿐인 첫째 딸 다현이의 생각과 행동이 어찌 이리도 사려깊고 어른스러운지...

제가 다현이 나이만했을 시절을 기억해보면 절대 이렇지 못했는데... 아빠보다 훨씬 더 어른스러운 것 같습니다.

가족과 사랑과 행복에 대해서 많은 생각이 교차되는 설날 하루였습니다.


이제 막 우리나이 7살이 된 둘째 딸 서현이의 세뱃돈은 어떻게 되었냐구요?

아직 돈개념이 없는 서현이는 세뱃돈을 받는 족족 그 자리에서 엄마에게 셔틀처럼 배달했었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