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

사랑니 잘 뽑는 치과의사는 따로 있는 걸까?

달려라꼴찌 2010. 4. 20. 06:54

사랑니 잘 뽑는 치과의사는 따로 있는 걸까?

 

개원 초반 젊고 얼굴도 동안이었던 파릇파릇했던 시절,

연세 지긋하신 환자분들 중에는 원장이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치아는 잘뽑겠냐고 미심쩍어 하기도 하셨고 

단 몇초만에 사랑니 발치를 한 몇몇 환자분들은 도대체 순식간에 사랑니를 뽑은 그 힘이 어디서 나오냐고 궁금해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때마다 저의 대답은 "사랑니는 힘으로 뽑는게 아니랍니다." 였습니다.

 

어쩌다가 제가 사랑니를 안 아프게 잘 잘 뽑는다고 소문이 났는지,

소개 소개로 사랑니 발치에 대한 검진을 많이들 오십니다. ㅡ.ㅡ;;;

그러나 과연 사랑니를 잘 뽑는 치과의사가 따로 있어서 제가 잘 뽑는걸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절대로 아닙니다.

 

 

 

 

 

 

 

 

 

 

 

 

 

사랑니 수술 발치하는 제 뒷모습입니다.

귀가 빨개진 것이 무언가 뜻대로 안되고 있나 봅니다. ㅡ.ㅡ;;;

 

 

 

치과대학 시절 교수님께 골백번도 더 들었던 말 중에

명의(名醫)가 되는 지름길은 'CASE SELECTION' 에 달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치료의 쉽고 어렵운 난이도에 따라 가려서 환자를 대한다는 말이라기 보다는 

환자의 상태가 자신의 진료영역과 능력에 합당한지를 먼저 잘 판단해야한다는 말입니다.

 

어느 한 사람 얼굴 모양이 다 다르듯이, 똑같은 사람에서도 사랑니의 모양들은 저마다 각양각색입니다.

사랑니의 모양과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보지만,

이것 마저도 입체적인 상태를 평면화시킨 것이다 보니 정확할 수는 없어서 경우에 따라서는 3차원 영상을 얻기위해 CT를 찍기도 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모양을 가진 사랑니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 같은 똑같은 사랑니로 취급하는 '일반화'의 오류에 쉽게 빠집니다.

 

 

치아의 모양이 무우처럼 둥굴둥글하면서 뿌리가 한개거나 곧은 상태일때 발치가 쉬워지고

뼈의 밀도가 치밀하게 이루어진 아래턱보다는 성긴 뼈인 해면골로 이루어진 위턱인 경우에서,  

그리고 20대초 미만으로 나이가 어릴수록 골의 성숙도가 덜한 상태이기 때문에 사랑니를 빼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들을 일반인인 환자 분들은 모르기에 

요즘처럼 인터넷의 발달로 개인의 경험을 공유하기 좋은 세상에서는 자칫 정보가 와전되기 쉽기도 합니다.  

누구는 사랑니를 눈 깜짝할 사이에 뺐는데, 누구는 한시간 동안 빼다가 죽을 뻔 했다 등등....

 

낚시 바늘 갈고리 모양으로 처럼 뿌리가 심하게 휘어진 사랑니나, 90 도로 벌러덩 누워있는 사랑니...

또는 뿌리가 신경관과 붙어있어 엑스레이 사진을 바로보는 치과의사의 심장마저 콩닥콩닥 뛰게하는 사랑니를

오랜시간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귀가 시뻘개져가면서 뺐는데....

결국 돌아오는 것은 실력없는 치과의사한테 재수없게 잘못걸렸다는 듯한 퉁퉁 부어오른 얼굴에 냉담한 시선이라면? ㅠㅜ

실제로 경우에 따라 사랑니를 뽑고 나서 많이 붓거나 아래턱의 감각이상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의사나 치과의사로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측은지심' 이라고 생각합니다.

측은지심이란 사람으로서 당연히 가질 수 밖에 없는 감정이지만,

이런 감정으로 인해 철저한 진단과 치료과정에서의 객관성과 정확성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개원 초반에는 자신감도 넘쳤을 뿐만 아니라

정말 사랑니로 아파오시는 분들 보면 마치 제 일인냥 함께 마음 아파하며 빨리 빼드리고 싶었습니다.

대학병원까지 가는 수고로움을 덜어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못한다면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구요. ㅡ.ㅡ;;;

 

그러나 지금은? 

할 줄 아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릅니다.

환자분에게 양질의 진료를 받으실 선택권을 드립니다.

사랑니 발치시 합병증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발치를 위한 전투약을 반드시 합니다.

 

 

 

 

 

위 사진의 환자분은 사랑니가 불편해서 오신 첫 날, 말 그대로 단 1-2초 안에 '눈 깜짝할 사이' 에 발치해드렸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이 환자 분의 소개로 아래 방사선 사진의 환자분이 오셨습니다. ^^;;;

 

 

 

 

소개받고 온 환자분 방사선 사진입니다.

사진에서 보면 한쪽 사랑니는 90도로 누워서 뼈 속에 잠수중이고 (빨간색 원),

다른 한쪽 사랑니의 뒤쪽 뿌리는 갈고리처럼 휘어져있습니다 (파란색 원). ㅡ.ㅡ;;;

이 분도 역시 눈깜짝할 사이에 안아프게 빼 달라고 오셨던 겁니다. OTL

치료의 난이도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오로지 개인이나 주변사람의 경험에 의해서만 고집 부리는 분들도 많이 있지만,

이 환자분의 경우는 다행히

본인의 사랑니 상태에 대한 것과 발치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에 대한 설명을 정말 열심히 들어주셨습니다.

 

 

사람들마다 저 마다의 무용담은 한가지씩 있습니다.

남자들은 군대 다녀온 이야기, 여자들은 아이 낳을 때 이야기, 등등등... 

그리고 이렇게 사랑니 발치와 관련된 이야기와 사연들이 치과의사에게는 무용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사랑니 뽑을때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많이 아프고 붓더라도, 발치하느라 고생한 치과의사를 너무 원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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